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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SUMMER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w.익명-김채원X조유리]

 

 

"약속했으면서.... 거짓말쟁이..."

 

"김채원 바보 멍청이!"

 

 

 

좋아한다는 말만 듣고 떠났던 사람. 돌아온다고 약속했던 사람.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던 사람. 오늘만을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나는 김채원이 좋았다. 부모님들끼리 친해서 바로 옆집에 사는 것도 좋았고 외동이라서 언니가 생긴 것만 같아서 좋았다. 예쁘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소위 엄친딸. 그런 사람이 잘 챙겨주고 먹을 거 있으면 나눠주고 남자애들이 놀리면 혼내주고 정말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줬다. 김채원이 한다고 하면 다 따라 하려고 해서 웬만한 건 다 같이 했다. 같은 학원을 다니고, 나란히 앉아서 공부하고,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어딜 간다고 하면 다 따라갔다. 그런 게 귀찮을 법할 텐데도 귀찮은 내색 없이 웃으며 대해주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그런 점 때문에 김채원과 함께하는 모든 일이 재밌고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니고 김채원 한정으로 스킨십이 많아져서 붙은 별명이 김채원의 강아지다. 이 감정이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건 한참 후의 이야기이지만.

 

 

 

유리야, 오늘도 별 보러 갈까?

 

별똥별 떨어지는 날이야?

 

, 엄청 많이 떨어지는 날이래

 

우와~ 갈래! 무조건 갈 거야!

 

 

 

별이 아주 잘 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우리의 아지트. 아지트라고 하기엔 사방이 다 뚫려있긴 하지만. 김채원이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별 보는 걸 특히나 좋아해서 자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잘 보이는 곳을 찾아다녔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라고 했는데 처음 그곳에 손을 꼭 잡고 따라갔을 땐 정말 지금까지 봤던 곳보다 훨씬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김채원이 별 보는 걸 좋아하고 자주 같이 별을 보러 다니기도 해서 어느 순간부터 별 보는 걸 엄청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시작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별똥별이 떨어졌었고 그때가 김채원이 10, 내가 7살이었다. 처음 별똥별을 보기도 했고 그걸 김채원과 같이 봤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해서 그 후로부터 자주 그곳을 찾아가 별을 봤었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인 것 같아서 매번 거기엔 김채원과 나 이렇게 둘뿐이었고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은 정말 예뻤다. 처음엔 무수히 많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감탄하며 보느라 소원을 빌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무슨 소원 빌었어?

 

... 비밀

 

.. 나한테도 말 못 해줘?

 

넌 무슨 소원 빌었는데?

 

나도 비밀~

 

 

 

그래도 두 번째로 갔을 때부턴 나란히 서서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고 별똥별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오가는 말은 없었다. 아지트에서 내려올 때는 얘기하지만 늘 그렇듯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까. 별똥별이 떨어지지 않는 날에도 아지트를 찾아갔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언제나 아지트를 찾아가 시간을 보냈다. 얘기하기도 하고 별을 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시간은 엄청 빨리 지나갔다. 김채원이 항상 옆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내일부터는 유리 혼자 가야 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 일 때문에 멀리 가게 됐어

 

멀리 어디? 이제 못 만나..?

 

만나기 힘들 거 같아. 우리 유리, 언니 없어도 혼자 잘 할 수 있지?

 

안 가면 안 돼..? 나 언니 좋아한단 말이야...

 

 

 

아직 같이 하고 싶은 것도, 같이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제 김채원을 만나지 못한다. 김채원을 좋아하는 이 감정이 다른 거란 걸 이제서야 깨달았는데 김채원이 떠난다는 말을 들으니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눈물이 차올라서 시야가 점점 흐릿해진다. 김채원 더 봐야 되는데, 눈이랑 머리에 담아야 되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맞잡힌 손에 더욱 힘이 실려온다. 팔을 당겨 끌어당기는 대로 어깨를 감싸는 대로 품에 안겼다. 포근하고 따뜻한 품.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아주 펑펑 울어버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만나기 힘들 거라며..

 

언니가 유리 보러 올게

 

정말?

 

, 근데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몰라.

 

얼마나..?

 

아주 많이..

 

 

 

겨우 진정됐는데, 겨우 눈물이 멈췄는데 다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주 많이라는 기약 없는 말이 너무 싫다. 김채원의 말이라면 다 좋았는데 오늘만큼은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나랑 같이 살면 안 되냐고, 안 가면 안 되냐고 붙잡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엔 김채원은 아직 어리고 떨어져 살게 되면 많이 힘들 테니까. 등을 토닥여주는 따스한 손길에 또다시 김채원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야만 했다.

 

 

 

 

별똥별 10번째 떨어지는 날 다시 만나자. 우리 항상 별 보러 가던 곳에서

 

 

 

 

 

 

 

*

 

 

 

 

 

 

처음엔 김채원에게서 연락이 자주 왔었다. 전화든 문자든. 하지만 3년 정도 지나서부턴 연락이 뜸해지더니 5년 정도 지나서부턴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바빠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었지만 마지막 문자로부터 5년 동안 답장이 없었으니 이젠 일부터 연락을 안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버린다. 그래도 서프라이즈 해주려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약속했던 10번째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 아지트로 갔었다. 그날은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도 빠지고 아지트로 향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김채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9년 동안 혼자 가서 소원을 빌었던 곳에서 이번엔 김채원과 소원을 빌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졌던 건 한순간에 무너졌었다.

 

'김채원을 만나게 해주세요' 9년 동안 정말 꾸준히 빌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락이 끊겨서 예상은 했었지만 10년 동안 소원을 빌었으니 이루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벌써 10년 전 약속을 김채원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눈물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더 빌어본다. '제발... 김채원을 만나게 해주세요' 더욱더 간절함을 담아서.

 

 

 

"어제 만났어?"

 

"아니..."

 

"뭐야, 그럼 잊은 거 아냐?"

 

"그런가..."

 

",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 내가 사줄게!"

 

"그래.."

 

 

 

잊은 거 아니냐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왜 화가 안 나는 걸까. 아마 1년 전에 들었다면 그런 거 아니라고 화를 냈을 텐데 이젠 정말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어버린다.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것도, 김민주가 옆에서 뭐라고 말하는 것도 다 집중이 안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떡볶이도 입맛이 없어서 그런지 별로 맛이 없다.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신나지도 않고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잠을 자면 김채원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있을 테니까.

 

 

 

"너 혼자 가면 안 돼?"

 

"! 네가 같이 가자며"

 

"안 가고 싶어졌어.."

 

"둘이서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안 가냐? 그리고 별이 무슨 죄야"

 

".. 그래, 가자 가"

 

 

 

대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동아리는 필수가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그런 꽃 같은 활동이다. 물론 대부분 친목 겸 공짜술을 먹기 위해서 가입하긴 하지만. 하지만 나의 목적은 오직 별 하나뿐이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동아리. 천체관측 동아리 포스터를 보자마자 흥미가 생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겠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서 절친인 민주를 꼬셔서 동아리에 어제 가겠다는 말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별똥별이 떨어졌던 어제 또 김채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아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진 상태였는데 김민주가 질질 끌고 온 덕에 동아리방 앞에 도착했다. 그래.. 별이 무슨 죄야.

 

별을 좋아하게 된 것도 동아리에 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도 다 김채원 때문인데 어제 또 만나지 못했다고 좋아하는 마음들이 한순간에 다 사라진 것 같았다. 올해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지 못했으니 의욕이 더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미 동아리방 앞에 도착했고 몇 년 동안 좋아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을 순 없다는 김민주의 말에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동아리 가입하려고 왔는데요"

 

"반가워요. 천체관측... .. 유리..?"

 

"......"

 

"유리야! 조유리! 어디 가!"

 

 

 

너무나도 그리운 모습이었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미운 마음이 더 깊어져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무작정 도망쳐버렸다. 더 있다간 김채원의 이름을 부를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안길 것만 같았고,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어린 시절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의 김채원. 더 예뻐진 김채원.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분명한 김채원이었다.

 

왜 거기 있었던 건지, 왜 나타나지 않았던 건지, 약속을 잊어버렸던 건지 묻고 싶은 게 쏟아지듯 머릿속에 떠오르고 눈물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결국 무너져버렸고 아주 펑펑 눈물을 쏟아내버렸다. 김채원이 밉다. 김채원이 싫다. 김채원은 바보 멍청이다.

 

 

 

"괜찮아?"

 

"아니... 미안, 어제 그렇게 가서"

 

"... 그 사람 맞지?"

 

"..."

 

"얘기해보는 건 어때?"

 

"보기 싫어.."

 

 

 

하루 종일 울다가 잠들어서 그런지 아침에 눈이 팅팅 부어있어서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전공수업이 있어서 급하게 얼음팩으로 눈을 가라앉히긴 했는데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혹시나 티가 날까 싶었지만 김민주는 눈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했다. 모른 척해 주는 걸 수도 있지만. 보기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하루 종일 머릿속은 온통 김채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의를 들을 때, 밥을 먹을 때, 카페에서 쉴 때. 어제 본 김채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하지만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아서 분하기도 하고 만난다면 화부터 내버릴까 무섭기도 해서 선뜻 보러 갈 수가 없다. 대학교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천체관측 동아리에만 가면 김채원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보고 싶으면 보러 가"

 

"아니거든!"

 

"그럼 왜 하루 종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있는 건데!"

 

", 아닌데?!"

 

"어휴.. 조유리 좀 솔직해져라"

 

"몰라! 영화 보러 갈래?"

 

"오늘은 너 먼저 가. 나 동아리 가야 돼"

 

"동아리..? 무슨 동아리?"

 

"천체관측. 너도 갈래?"

 

"! 네가 거길 왜 가"

 

"별 보고 싶어서. 안 가면 나 혼자 간다"

 

 

 

절대 안 간다고 한 번 말했는데 김민주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세 번은 물어봐야 되는 거 아냐..?' 세 번 물어본다고 해서 간다는 확신은 없지만. 김민주도 가버리고 커피는 남았고 집에 가도 할 게 없기도 해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커피잔으로 손을 가져가는데 잔이 없다..?

 

 

 

"그거 내 건데요"

 

"유리야"

 

"... 그거 마시고 잔 직접 반납하세요."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분명 김민주가 말했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울컥함이 올라오려고 해서 도망치듯 카페를 나와버렸다. 어디로 갈지 정할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달렸다. 달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만 같아서. 결국 도착한 곳은 집이었고 집에 도착해서야 휴대폰을 놔두고 온 걸 알았다. 다시 돌아갈까 싶었지만 왠지 아직 있을 것만 같아서 가지 않았다. 휴대폰은 다시 사면 되니까.

 

 

 

", 이거 네 거지?"

 

"이걸 왜 네가 갖고 있어?"

 

"카페에 놔두고 갔다고 전해주라던데?"

 

"..."

 

 

 

김채원은 카페에서 만난 이후로 자주 나타났다. 학교에서든 밖에서든. 점심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고 있을 때면 앞자리에 앉아 과제를 하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카페에 갔을 땐 미리 커피 세 잔을 시켜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물론 다 김민주가 얘기한 거 같지만. 둘이 있을 때 자주 나타나는 건 김민주가 연락해서 그렇다고 해도 혼자 있을 땐 어딨는지 어떻게 알고 나타나는 걸까. 처음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었다. 딱히 말 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쳐다보기만 할 뿐이라서. 근데 그게 계속될수록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분명 동아리도 가야 할 거고 과제도 해야 할 거고 할 일이 많을 텐데 시간이 어디서 생기는 걸까. 그래, 김채원 네가 이겼어.

 

 

 

"동아리 안 가요?"

 

"같이 갈래?"

 

"관심 없어요."

 

"거짓말"

 

 

 

당연히 거짓말이다. 근데 그걸 또 고민도 없이 대답하니까 뭔가 다 들킨 것만 같아서 기분이 별로다. 나는 김채원을 모르겠는데 왜 김채원은 나를 다 아는 것만 같은 걸까. 10년 전에도 그랬는데 10년이 지났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건가. 이대로 있다간 다 꿰뚫어 보일 것만 같고 속마음을 다 말해버릴 것만 같아서 또 도망치듯 카페를 나와버렸다. 하지만 이번엔 김채원이 더 빨랐고 나오자마자 붙잡혀버렸다. 붙잡힌 손목을 빼내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도망가지 못했다. 바로 끌어당겨 안아버리는 품에서 도망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10년 만에 느껴보는 포근하고 그리웠던 품이라서. 결국 너무 쉽게 무너져버렸다. 등을 토닥여주는 따스한 손길에 예전처럼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아냈다.

 

 

 

"아직 울보네"

 

"아니거든요..."

 

"계속 존댓말 할 거야?"

 

",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존댓말 쓰는 거랬어요."

 

"누가?"

 

"있어요. 옆집에 살던 언니"

 

 

 

울어버린 게 부끄러워서 바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손목을 붙잡혀서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게 되었다. 눈은 팅팅 부은 것 같아 창피하고 김채원은 한결같아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제일 복잡한 건 지금 김채원과 같이 있는 이 상황 자체지만. 김채원은 무슨 생각으로 안아준 거고 여기로 데려온 걸까. 잊었다고 생각했고 좋아한다는 말에 대한 대답은 거절한 거라고 생각했다. 약속한 걸 지키지 않았으니까. 궁금한 걸 물어보고 싶지만 김채원의 입에서 직접 들을 대답이 무섭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 것만 같아서.

 

 

 

"미안해, 내가.. 많이 늦었지..?"

 

"....."

 

"약속 못 지킨 것도, 연락 못 한 것도 다... 미안해."

 

"..... 왜 연락 못 했어?"

 

"계속 연락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을까 봐 못 했어. 성인 될 때까진 한국에 못 돌아왔으니까... 한국에서 대학 다니려고 열심히 공부했었어. 약속 지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버렸네.."

 

"난 언니가 잊은 거라고 생각했어. 10년 전 약속이니까..."

 

"내가 어떻게 너랑 한 약속을 잊어.."

 

 

 

예상하던 대답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김채원의 진심이 담긴 말에 또다시 심장이 뭉클해지기 시작한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려 맞잡았다. 어렸을 때보다 커진 손이지만 퍼즐처럼 딱 맞게 맞물리는 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몸은 커졌는데 손은 그대로네"

 

"손도 커졌는데.."

 

"그때도 이렇게 손에 딱 맞게 잡혔었는데?"

 

".. 그걸 기억해?"

 

"어떻게 기억 못 해. 내가 맨날 잡고 다니던 손인데"

 

"진짜 언니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조유리한텐 늘 한결같긴 하지"

 

"맞아. 그래서 좋아"

 

 

 

한결같은 김채원. 정말 김채원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착한 성격도, 눈웃음이 예쁜 것도, 따뜻한 손도, 잔잔한 목소리도 다 그대로다. 어릴 때보단 몸이 크고 더 예뻐졌다는 것만 빼면. 김채원이 보기에도 나는 변한 게 없는 걸까. 다른게 다 변했다고 해도 아직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다. 지금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보면. 마음이 더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김채원의 마음을 모르겠다. 김채원의 생각과 마음을 모르겠는 것도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우리 내일 별 보러 갈까?"

 

"별똥별 떨어지는 날이야?"

 

", 엄청 많이 떨어지는 날이래"

 

"갈래, 언니랑 같이 가고 싶어"

 

 

 

김채원을 만났으니 이제 다른 소원을 빌어야 할 것 같다. 다음 소원을 이미 머릿속에 떠올리긴 했지만. 이건 정말 간절함을 더 많이 담아 빌어야 한다. 11년 동안 혼자 갔던 곳을 김채원과 같이 간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너무 설렌다. 덕분에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전화를 통해 얘기하는 거라서 새벽까지 하기도 했지만.

 

 

 

-조유리 왜 이렇게 예쁘고 귀여워졌어? 연애해서 그런가~?

 

"아니거든! 누가 나 연애한대?"

 

-민주가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그게 왜 연애하는 게 돼... 그리고 나 연애해본 적 없어"

 

-지금까지 사귄 사람 없었어?

 

", 없었어."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

 

-고백은 안 했어?

 

"대답 기다리는 중이야"

 

-그렇구나...

 

"언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있어. 고백은 못 했고

 

"? 언니가 고백하면 싫어할 사람 없을 거 같은데"

 

-내가 고백하면 뭐해.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어야지

 

".. 아니야?"

 

-몰라. 이미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인 것 같아

 

 

 

알면서 저러는 건지 진짜 몰라서 저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서 표정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얼굴을 봐도 표정을 숨기면 모를 수도 있지만. 김채원이 좋아하는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람이 엄청 부럽기만 하다.

 

강의가 다 끝나고 만나서 같이 가기로 해서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김채원이 달려오는 게 보인다. 멀리서부터 보이는데 엄청 예쁘게도 입었다. 심장이 또 엄청 뛴다. 데이트라도 한 건가. 애인은 없다고 했으니까 소개팅했으려나. 궁금한 게 많지만 물어보면 왠지 기분이 가라앉을 것만 같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

 

"기분 안 좋아 보여서"

 

"그냥... 언니는 엄청 기분 좋아 보이네"

 

"좋지. 오랜만에 너랑 아지트 가니까"

 

"그전엔 간 적 없었어?"

 

", 바쁘기도 했고 너랑 같이 가고 싶어서"

 

"갔으면 나랑 만났을 수도 있잖아"

 

"넌 자주 갔었어?"

 

", 별똥별 떨어지는 날에는 무조건 갔고 안 떨어지는 날에도 자주 갔었어. 언니 올까 봐"

 

"자주 갈 걸 그랬다. 그럼 더 빨리 만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해"

 

"그래도 만났잖아. 오늘 언니랑 같이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아"

 

 

 

김채원은 정말 신기하다. 안 좋았던 기분을 한순간에 좋게 만들어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김채원을 보기만 해도 너무 좋기만 하다. 예전처럼 손을 맞잡고 우리의 아지트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라서 어두워져 있었지만 밤하늘의 별은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릴 땐 집 근처에 있어서 도착했을 때 이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대학교에 다니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거리가 더 멀어졌다. 오늘은 강의까지 다 끝내고 왔으니 더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곧 별똥별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란히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얼마 안 가 밤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똥별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었다. 더 많은 간절함을 담아서.

 

 

 

"소원 빌었어?"

 

", 언니는?"

 

"나도 빌었어."

 

"무슨 소원 빌었어?"

 

"... 그전에 할 말 있어"

 

"뭔데?"

 

"좋아해. 내가 많이 좋아해, 유리야"

 

"... 그러니까 언니가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인 거 같다고 했던 사람이..."

 

", 너야. 네가 좋아하는 사람 있는 거 알지만 지금 아니면 고백 못 할 거 같아서.."

 

"언니, 내가 어릴 때 했던 말 기억나?"

 

"무슨 말?"

 

"언니 떠나기 전에 고백했던 거 기억 안 나?"

 

"고백..? 그거 그냥 한 말 아니었어..?"

 

"역시... 근데 그 대답 지금 들은 거 같아."

 

 

 

확인사살을 하려는 듯 자신의 볼을 꼬집는 김채원. 아픈지 얼굴이 찡그려지더니 금세 환하게 웃는다.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니 조금씩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다가온다. 눈을 꼭 감고 있으니 얼마 안 가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별똥별을 배경 삼아 하는 행복한 입맞춤. 이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11년 동안 빌었던 소원 이루어졌다?"

 

"무슨 소원 빌었었는데?"

 

"김채원을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는데 이루어졌고 오늘은 김채원이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어."

 

"오늘 소원도 이루어졌네?"

 

"정말?"

 

", 조유리가 옆에 있어서 행복해."

 

"언니는 무슨 소원 빌었어?"

 

"조유리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우와 같은 소원이네."

 

"우리 유리는 지금 행복해?"

 

", 너무너무 행복해."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김채원만 옆에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별똥별님 소원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채원 때문에 별 보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별똥별에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김채원이 사라지고 소원을 더 간절하게 빌기 시작했고 다시 만나선 행복을 바라게 되었다. 정말 별똥별이 소원을 이루어진 건지는 모르지만 이젠 그런 건 상관없을 것 같다. 믿든 안 믿든 내 소원은 이루어졌으니까.

 

 

 

"내년에도 또 오자."

 

"내년에만?"

 

"평소엔 못 오지 않을까?"

 

"그런가.. 나 시간 많은데"

 

"그거 다 나한테 안 쓸 거야?"

 

"그럼 우리 매일 데이트해?"

 

"싫어?"

 

"아니~ 좋아서"

 

"언니, 그냥 나랑 같이 살래?"

 

"내가 그렇게 좋아?"

 

"너무 좋아.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해. 너라면 뭐든 좋으니까"

 

"언니는 나랑 하고 싶은 거 없어?"

 

"... 키스해도 돼?"

 

 

 

대답도 안 했는데 갑자기 훅 다가오는 김채원은 반칙이다. 그런 김채원도 너무 좋아서 문제지만. 초조하게 기다리는 걸 조금 더 놀려줄까 하다가 긍정의 표시로 눈을 꼭 감았다.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숨결만큼 가까워진 거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수많은 별들 아래에서 하는 꿈같은 첫 키스. 뒤늦게 떨어지는 별똥별 하나에 마지막으로 소원을 빌어본다.

 

 

 

 

김채원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술 버릇+

 

 

 

 

 

"조유리 절대 안 올 거라더니 왔네"

 

"조용히 해라 김민주"

 

 

 

결국 천체관측 동아리에 가입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김채원이 있고 별을 볼 수 있으니까. 활동하는 동안 생각보다 여러 장소에 별을 보러 다녔고 천체관측소에 가기도 했다. 여러 곳을 가보긴 했지만 역시 아지트가 제일 별이 잘 보이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은 생각보다 정말 재밌었다. 좋은 사람들과 별을 같이 보고 생각을 나누는 건 정말 좋은 것 같다. 거기에 술자리까지. 원래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해서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동아리에서의 술자리는 좋았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 김채원의 술 버릇이긴 하지만.

 

처음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 환영식을 빙자한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었다. 술자리를 엄청 좋아하게 생긴 최예나 선배와 강혜원 선배가 밀어붙인 거긴 하지만. 둘 보다 어리지만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던 김채원은 반대했지만 선배들을 이길 순 없었다. 대충 들은 바로는 지금은 졸업했던 전 동아리 회장이 선배들을 믿지 못해서 김채원에게 회장 자리를 맡긴 거라고 하던데 왠지 전 회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리야아 우리 유리이"

 

"김채원 취했네 취했어"

 

"유리야, 채원이 취한 거 본 적 없지?"

 

"... 취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 그건 곧 알게 되지 않을까?"

 

"미리 말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대체 뭘 조심하라는 건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고 선배들은 서로 짠하며 술 마시기 바쁘다. 김민주는 우리랑 같이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랑 얘기하느라 바쁘고. 우리보다 한 살 어리고 이름이 안유진이라고 했지 싶은데. 아무튼 지금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옆에서 자꾸 붙어오는 내 애인인 김채원이 위험하다.

 

말을 늘리며 내 이름을 부르면서 몸을 밀착시켜 허리에 팔을 두르고 안겨오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 비비적거리기 시작한다. 평소엔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다가도 술에 취하면 애교가 많아지는 것 같았다. 생긴 것도 고양이 상인데 지금 하는 행동도 딱 고양이다. 기분 좋으면 쓰다듬어달라고 하는 고양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주니 비비적거리던 행동을 멈추고 빤히 쳐다본다.

 

 

 

"키스해 줘"

 

", 여기서..?"

 

"얼르은 해조오"

 

"지금 사람들도 많고..."

 

"하기 시러..?"

 

"아니, 그게 아니라..."

 

 

 

삐졌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삐졌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키스 안 해준다고 삐져서 떨어져 앉아 있는 거고 선배들이 조심하라고 했던 건 김채원의 스킨십이 많아지는 걸 말하는 거였다는 건데. 선배들이 김채원의 술 취한 모습을 알고 있는 걸 보면 키스해달라고 다른 사람한테도 한 적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술을 마셔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겨우 굴려 생각해낸 결론에 술이 다 깨는 기분이다.

 

 

 

"김채원"

 

", 김채원..?"

 

"대체 누구한테 키스해달라고 한 거야?"

 

"당연히 우리 유리지"

 

"예전에 술 취해서 누구한테 말했었냐고"

 

"말하긴 누구한테 말.... ..."

 

"나 집에 갈래"

 

 

 

뭔가 생각난 듯이 반응하는 김채원도 마음에 안 들고 더 있다간 싸울 것만 같아서 술집을 나와버렸다. 김채원에게 붙잡히기 전에 바로 앞에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집으로 갈 거라서 어차피 김채원이 온다면 만나긴 하겠지만. 지금은 얼굴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난다. 원래 과거에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닌데 김채원의 과거는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내가 모르는 김채원을 아는 사람들에게 질투가 난다. 내가 생각보다 김채원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술이 다 깨버렸고 잠도 오지 않는다. 아마 김채원이 오기 전까진 잠들지 못하겠지만.

 

도어록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김채원이 온 것 같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침대에 앉는 느낌과 얼굴에 닿아오는 손의 느낌. 다정하게 머리를 쓸어넘겨주는 손길에 화가 났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볼을 쓰다듬던 손길이 거둬지고 일어나려는 느낌에 무작정 손목을 붙잡아버렸다.

 

 

 

"미안해요"

 

"왜 네가 사과해. 잘 못 한 건 난데..."

 

"언니 신경 쓰이게 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그런 말 아무한테도 한적 없어"

 

"그럼 아까 선배들이 한 말은 뭐야..?"

 

"장난친 거야. 그리고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겠어"

 

"진짜로..?"

 

", 진짜로. 우리 유리 이제 화 풀렸어?"

 

".. 근데 질투 났어"

 

"왜 질투가 나"

 

"내가 모르는 김채원의 모습을 알고 있어서"

 

"으구~ 귀여워. 질투 많이 났어?"

 

".. 엄청 많이"

 

 

 

질투 났다는데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인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 저렇게 바라보면 투정 부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허리를 끌어당기니 그대로 끌려왔고 품에 얼굴을 묻으니 더 꼭 안아준다. 이제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말 마법 같은 김채원.

 

 

 

"키스해도 돼?"

 

 

 

조금 놀려줄까 하다가 그대로 입술을 꾹 부딪혀버렸다.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려던 생각은 김채원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지만. 갑자기 떠오르긴 했지만 다음에 별똥별에 빌고 싶은 소원이 생겼다.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별똥별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별똥별님 소원 들어주실 거죠?

 

 

 

 

 

내가 없던 시절의 김채원을 만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