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목 놓아 우노라 [w.꼬리별 - 안유진X김민주]
이 날을 목 놓아 우노라
민주는 유진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진은 제 집안에 대해서 일절 얘기하지 않았지만 권 선생에게 들은 바로는 유진의 아비가 일본 내지에서도 인맥이 좋다고 했다. 그저 상류층 집안의 자식도 아니고 친일파 집안이라니…….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안유진이라고 합니다.
차분하게 말하는 유진의 손은 참 희고 고왔다. 궂은일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상처 하나 없는 손. 이런 애가 대체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찾아온 건가. 그래서 민주는 고개 숙여 인사하는 유진에게 그래, 짤막하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줄곧 차갑게 대했지만 결사단 내에 또래라고 할 만한 여자는 민주밖에 없었기에 유진은 민주에게 여전히 살갑게 굴었다.
“넌 지치지도 않니?”
“네?”
“지치지도 않냐구.”
“혹시 제가 이러는 거…… 부담스러우세요?”
그렇담 어쩔 거니? 물으려다가 그 말은 그냥 삼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유진은 사과한다.
“앞으론 자제할게요, 죄송해요.”
상처받은 듯한 유진의 얼굴에 민주는 왜인지 거슬렸다.
전보다 말을 거는 횟수는 줄었지만 유진은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여전히 민주를 찾았다. 그게 참 불편하면서도 이상하게 유진의 웃는 낯을 보면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결국 유진을 따라가고 마는 것이었다.
“민주 양은 유진 양 참 싫어하더니, 친해졌나 봐요.”
권 선생이 그런 말을 하면 단호하게 부정했지만, 민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운 정이란 게 진짜로 있나. 이후로 유독 유진과 함께 하는 임무가 많아져서 민주는 매번 질색했다.
유진의 행동은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단 한 가지 민주 역시 인정하는 것은 깔끔한 일 처리. 사실 딱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꼼꼼하던 민주가 실수로 깜빡했던―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한―뒤처리를 유진이 처리해준 날, 민주는 유진을 인정했다. 잘했네. 한번 칭찬해준 뒤로 계속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아서 곤란했지만.
그만 좀 웃으라고 타박하곤 해도 항상 무거운 분위기에 잠겨있던 결사단에 밝음을 가져다주는 유진의 긍정이 가끔은 좋았다. 그러다 현실을 잊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웃음. 어느 날은 물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데 두렵지 않으냐고.
“두렵지 않을 리가 있나요. 하지만…… 조국을 위해서 목숨쯤은 기꺼이 바칠 각오로 들어온 거니까.”
말은 잘하는구나. 민주가 옅게 웃었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처리해야 할 주요 인물. 안유진의 아버지. 유진은 무슨 대답을 할까.
“넌 네 손으로 네 아버지를 죽일 수 있니.”
유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죽여야 한다면…….”
유진은 결국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말 끝을 흐렸다. 너는 못하겠구나.
/
유진은 수상한 구석이 분명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책방을 운영하는 결사단의 은신처에 종종 고급 양장을 입은 사람들이 유진을 찾았다. 그럼 유진은 굳은 얼굴로 나가서 그들과 어딘가로 사라졌다. 또 매일 밤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집중해서 쓰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밤을 보내지 않을 때면 밖으로 나갔다. 몇 번 뒤를 밟았는데,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민주는 금방 유진을 놓쳤다.
‘권 선생님은 모르시는 걸까.’
아무리 해도 너무 이상했다. 유진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쯤, 권 선생에게 들은 한 마디는 민주의 가정을 확신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밀정이 있는 것 같아요.”
“밀정이요?”
“최근 결사단에 들어온 사람 중에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일단 민주 양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권 선생이 웃으며 말했지만, 민주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최근에 들어온 사람. 그리고 수상한 사람. 안유진 말고 누가 더 있는가? 얼마 전에 함께 폭탄을 나른 박 군이라던가, 유진과 비슷한 시기에 결사단에 들어온 사람이 두어 명 더 있긴 했지만……. 조심해야겠어. 민주가 품 안의 권총을 꽉 쥐었다.
민주 양. 유진 양과 군산에 다녀와 줄 수 있나요? 유진을 계속 경계하고 있던 참이었다. 권 선생이 대뜸 민주를 부르더니 묻는 것이었다.
“군산이요?”
“전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저번에 자금을 조달해주었던 최 씨, 기억하죠?”
권 선생이 묵직한 가방을 민주 앞으로 밀었다. 가방을 열자 폭약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내 이름을 대면 바로 알 겁니다. 다만…… 경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할 거 같은데.”
“네?”
“불편한 건 알아요. 하지만 민주 양과 유진 양 말고는 사람이…….”
“……괜찮아요, 선생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긴 어려웠다. 권 선생이 제안한 대책은 민주와 유진이 부부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너른 어깨의 유진이 남장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유진 양에게는 미리 말해두었어요. 신분증과 표는 모두 사뒀었으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해요.”
부부라니. 게다가 그토록 경계하는 안유진과.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서자 암갈색 정장을 차려입고 중절모를 쓴 유진이 있었다. 묵직해 보이는 가방에 시선이 갔다.
“폭탄은 거기 넣었니?”
“네. 권 선생님이 주신 그대로…….”
“가방은 수색당할 거야. 너무 위험해.”
민주가 자주색 치마를 걷었다.
“치마는 왜요?”
다리에 폭약을 두르는 민주를 보더니 유진이 화들짝 놀라 말린다.
“아무리 무뢰한이라 해도 여인네 치마를 들추겠니? 그리고 이제 언니라고 하지 말어. 우린 부부 행세를 하는 중이니까.”
“아…… 네…….”
빈 가방에는 옷가지를 넣고 책방을 나섰다. 고개를 돌려 다시 본 유진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유진이 갑자기 제 팔을 당기길래 그쪽으로 시선을 따라가자 사진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사진 찍을까요?”
“뭣 하러?”
“그래야 더 부부 같잖아요.”
민주의 귀에 흘린 유진의 낮은 목소리가 마음을 간지럽힌다. 정신을 차려보자 민주는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다. 조금만 더 웃어달라는 요청에 애써 입꼬리를 올린다. 사진을 찍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받은 사진에서 유진은 평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에 비해 민주는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다.
“저만 웃고 있으니까 어색하네요.”
“좀 더 웃을 걸 그랬나 보네.”
아쉽다. 하고 사진 속의 그 웃음을 또 짓는 유진의 얼굴가 시야에 한가득 담겼다. 약간의 씁쓸함이 묻어난 그것은 기차에 타서 군산에 도착할 때까지 짙게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상념은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를 빠르게 느껴지도록 했다. 기차는 금세 군산에 도착했고, 여름의 더운 공기를 느끼며 역을 나갔다. 역 앞에서 이제 어떡하냐는 얼굴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인력거! 유진이 손을 번쩍 들더니 외치려고 해서 민주는 황급히 유진을 붙잡았다.
“그냥 걸어가자.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하지만 인력거가 편하지 않나요?”
“둘이서 타고 가게?”
속 편한 소리 한다. 민주가 조소를 머금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언니, 같이……! 유진의 언니 소리에 민주가 휙 돌아본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유진에게 으름장을 놓는 민주다.
“미쳤니? 우린 지금 부부야. 언니라고 부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 죄송해요.”
유진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그래도 같이 가요. 따로 가면 이상하잖아요. 유진이 민주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약도를 보아도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어서 유진과 민주는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혹시 이 서책방 어딘지 아세요? 유진이 내민 약도를 보자마자 아, 여기! 하곤 그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경성에서 오셨어라?”
“아, 예.”
군산 사람과 그새 편하게 말을 주고받던 유진이 우뚝 멈춘다. 붉은 벽돌집. 가을의 낙엽을 닮은 붉은색이 예쁘다.
“우리 저기서 살면 참 좋겠다. 그렇지요, 부인?”
민주가 당황한다.
“네. 집이 예쁘네요.”
이렇게까지 연기를 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을 담고 유진을 쳐다보았지만 유진은 알아들은 듯하더니 그냥 웃고 만다.
하하. 저 집이 좋긴 하지요. 아직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던디. 그렇습니까? 저렇게 예쁜 집인데, 여태 주인이 없다니.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당게요. 아…… 그렇군요.
유진이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는 동안 어느새 찻집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깍듯이 인사하는 유진에, 그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돌아간다. 민주도 얼굴을 살짝 까딱한다. 책방 안으로 들어가자 종이 냄새가 훅 끼친다. 딸랑. 종이 울리는 소리에 최 씨가 나왔다.
“누구시오?”
“권 선생님 부탁으로 왔습니다.”
“권 선생?”
“권은비라고……. 이름을 대면 알 거라고 하시던데.”
“아아. 물건은?”
민주가 폭탄을 둘렀을 때처럼 치마를 걷는다. 다리에다가 감아서……. 대단하네. 불편하진 않으셨고?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담담한 말투였다. 폭탄을 감고 있는 끈을 풀어서 전달하자 유진이 최 씨에게 편지를 내민다. 아, 그래. 최 씨는 탁자에 기대어 편지를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그래서, 다시 경성으로 돌아갈 예정?”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 묵고 가도 괜찮은데. 어디서 오셨소?”
“경성입니다.”
“경성에서 예까지? 고생했네. 차라도 드시지.”
“사양하겠습니다.”
경성에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어서. 유진은 바로 갈 생각이 없었는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다. 그 변화를 본 최 씨가 작은 상자를 건넨다.
“이거, 찻잎인데. 이거라도 드릴게.”
“감사합니다.”
“밝은 아가씨네.”
최 씨의 말에 유진이 눈을 크게 뜬다.
“많이 티 납니까?”
“변장한 사람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내가 그것도 못 알아볼까.”
최 씨가 담배를 입에 물어 뭉개진 발음으로 말한다. 아가씨는 잘 꾸미긴 했네. 언 듯 보면 진짜 부부인 줄 알았어. 당황한 유진을 보며 최 씨가 와하하 웃었다.
“농담이네.”
그렇게 말했지만 민주는 최 씨가 덧붙인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거 아가씨가 이짝 보는 눈빛이 꼭 사랑하는 사람 보는 눈빛이길래. 유진이 저를 어떻게 본 걸까.
/
유진은 군산에서 경성으로 도착하자마자 어디 들릴 곳이 있다며 은신처와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먼저 가 있어요, 부인. 같은 낯간지러운 말을 하고. 진짜 결혼한 사이라고 착각이라도 한 건가. 어디 가는지 물어봤지만 유진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혼자 돌아온 민주에게 권 선생이 유진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유진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의구심이라도 가질 줄 알았는데 권 선생은 그래요? 하고 말았다.
그날 유진은 해가 지고 아주 어두운 밤에 조용히 돌아왔다. 유진이 권 선생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슬쩍 서랍에 든 종이를 보았다. 상해, 밀정, 자금. 단어 여럿이 마구잡이로 적혀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 황급히 서랍을 닫고 다시 민주의 방으로 돌아왔다. 유진이 또 책상에 앉아 무언갈 쓴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유진과 민주가 군산에 간 동안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거사는 실패했다. 밀정이 정보를 빼간 탓이었다. 착잡했다. 권 선생은 괜찮다고만 했다. 민주가 이를 꽉 깨물었다. 권 선생의 방문 앞에서는 박 군이 서 있었다.
“소식은 들었지요?”
“밀정이 있단 얘기 말인가?”
“예. 그거…… 유진 같지 않습니까?”
“안유진?”
“어제 나가서 늦게 들어온 것도 그렇고…….”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까 보니 짐을 싸고 있던데, 어디 도망이라도 가려고 하는지. 박 군을 말을 듣고 달려간 유진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밤에 또 어딜 간 건가. 혹시 몰라 총을 챙기고 뒷문으로 향했다.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남아있는 싹은,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권 선생님의 말씀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민주는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생각에 온통 잠겨있었다. 민주는 건물 뒤로 향했다.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두운 골목 뒤로는 숲이 뻗어있었다. 나무 그림자 사이에 사람의 형체가 아른아른했다. 유진이었다.
“언니.”
“언니라고 부르는 거 허락한 적 없는데.”
유진이 싸늘한 민주를 보며 웃었다. 웃겨? 지금 이 상황이? 민주가 권총을 들어 유진을 겨눈다. 예상과는 달리 유진은 여전히 웃음기를 품은 채로 천천히 양팔을 들어 올렸다. 총을 든 상태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 하는 거야.”
권총을 꾹 쥔 손이 마구 흔들렸다. 눈 질끈 감고 딱 쏘면 되는데.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에 힘만 주면 되는데. 민주는 결국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간의 정이 있어서 보내주는 거다.”
유진의 눈이 커진다.
“가.”
다음번에 마주치면 그때는 죽일 거니까. 유진은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등을 돌려 나무 사이로 뛰어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유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밀정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했다. 권 선생이 민주에게 하나의 사실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민주 양, 밀정을 잡았어요.”
“밀정이요?”
밀정이라는 단어에 민주는 가장 먼저 유진을 떠올렸다. 유진 말고 다른 밀정이 또 있었나. 생각이 읽히기라도 했는지 권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박 군이었어요.”
“네? 그럼…….”
“유진 양이 남겨놓은 증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 아찔했다. 민주가 밀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유진은 아니었다. 밀정을 처리하기 위해 밀정인 양 수상하게 보인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겨우 탁자를 짚고 버텼다. 권 선생은 애매하게 웃더니 민주에게 무언갈 건넸다.
“상해 지부에서 민주 양에게 전하라고 한 물건이에요.”
“유진, 유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유진 양의 행방은 아직…….”
권 선생이 건넨 것은 암갈색의 정장 웃옷이었다.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아주 얄팍한 검은색 가죽 지갑이 있었다. 유진에게 총구를 겨눴을 때처럼 달달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열었다. 곱게 접힌 편지 하나와 사진. 무슨 액체에 젖었는지 귀퉁이에 갈색 얼룩이 진 사진은, 군산에 임무를 하러 가기 전 경성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민주의 희미한 미소와 달리 유진은 꽤 환히 웃고 있는 사진.
민주의 발밑으로 또 다른 사진 하나가 툭 떨어졌다. 웃옷 안주머니에서 나온 듯했다. 민주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든다. 사진 속에는 민주 저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고풍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꼿꼿한 자세를 하고 앉아있는 김민주. 뒷면에는 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로 뭔가 적혀있었다.
사랑하는.
민주는 입술을 깨물며 편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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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언니께
언니, 저 유진입니다.
하늘이 참 맑은 게 이제 완연한 가을인가 보네요.
여기까지 도망쳐 와서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면
언니는 비웃으시겠죠.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러냐고.
언니
저는요
조선을 참 사랑했어요.
물론 지금도 무척 사랑하지만……
민주 언니
저는요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언니는 어떠셨나요.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제 재산의 절반은 결사단에 지원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언니의 앞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언니가 하고 싶은 대로 쓰셔요.
바람이 많이 붑니다.
언니, 부디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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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는 군산의 붉은 벽돌집을 샀다.
是日也放聲大哭
이 날, 목놓아 통곡하노라